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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 전
-한국의 유미주의와 다원주의-
김 효 선 (독립큐레이터)
◇ - 사진 -
제3회 국전작가회 회원展
개막식 자료에서 발췌
-자료 사진 발췌 2019 . 4. 5. 권의철
국 전
-한국의 유미주의와 다원주의-
김 효 선 (독립큐레이터)
예술은 이미지로 말하고 학문은 언어로 말한다. 그리고 예술은 주관적이며 학문은
객관적이다. 왜냐하면 학문은 진리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때 학문은 객관
적인 관찰에서 비롯된다. 이에 비해 예술은 주관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한다. 이 아름
다움은 사람마다 그 표현이 다양하다. 이 다양한 예술가들의 주관적인 사상과 기술
을 모아 시대의 풍습을 체계화하는 학문은 진정 이 시대의 진실을 대변하는 것이
리라. 그리고 그 진실을 대변하는 대표적인 전시회가 바로 “국전작가회”이다.
“국전작가회”는 국전에서 입상했던 작가들이 모여 결성된 전람회이다. 우리나라의
관전인 “대한민국미술전람회(약칭하여 국전)”는 그 오랜 역사와 권위를 자랑하는
우리의 미술전람회이다.
그러나 국전은 서양의 살롱전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본래 살롱이 가졌던 의미
가 일본을 통해 전이되면서 변질되어 이식된 것이 우리의 국전이다. 일제 강점기에는
제대로 된 미술교육 기관이 없었다. 미술학교 창설 움직임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으나
끝내 우리의 미술학교는 출현하지 못 했다. 이렇듯 우리나라의 아카데미 없는 아카데
미즘에서 처음 도입한 것은 관설 전람회제도였다. 그 최초의 관전은 조선미술전람회
(약칭하여 선전)였다. 당시 선전은 문화정치의 일환으로서 일제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리고 드디어 1945년 8월 15일 해방과 함께 문화예술인들이 조선문화건설중앙협의회
를 조직하고 그 산하 단체로 조선미술건설본부를 창설하였다. 전국의 미술가 185명이
참가하여 중앙위원장 고희동을 중심으로, 선전 참여작가를 제외한 전 조선미술인이
총집결하였다. 정부가 수립된 다음 해, 1949년에 문교부고시 제1호로 대한민국미술전
람회(약칭하여 국전)가 정식 출범하게 되었다. 국전은 해방 이후 전체 미술가들의 축제
의 장을 마련해준 선전 이후 최초의 전국적 규모의 전시체제였다.
이 국전은 민족 미술의 제전으로서 민족의 체취가 어리고 찬란한 우리 미술의 전통을
부흥시키는 역사적인 사명을 띠고 발족하였다. 국전은 우리나라 미술 향상의 중요한
모체가 되었으며 그런 의미에서 이 미술전람회는 역사적 사회적인 중요한 의의를 가지며,
미술인들에게 절대적 힘을 실어주었다. 이에 따라 국전은 그 권위와 함께 화단에서
군림하게 되었다. 국전이 개최되는 공간은 제도권의 관여에 의해 개념적, 물리적,
사회적으로 보수적 성향을 갖는다. 이는 양차대전 이후, 국민총생산의 증가와 시민들의
생활 안정에 의한 물리적 풍요로 인해서이다. 이 경제적 안정은 화단에도 영향을 끼쳐,
화가들로 하여금 정치적으로 보수의 길을 걷게 한다.
그리고 이 화단의 보수화 성향은 순수한 예술지상주의의 발로이며 탐미주의적 유미
주의
의 발로이다. 즉 이들은 세련된 취미를 추구하며 시대의 공백을 극복한 화가들로서
화단의
주류를 이루는 자들이다. 이들의 유미주의적 성향은 화폭 속에서 화려한 색채와 왜곡된
형태들로 재현된다. 국전은 본질적으로 어떤 틀에 박힌 기준에 의하여 평가되거나 성립될
수 없었다. 국전은 그 전개과정과 운영에서 드러냈던 문제점에 의해 미래의 향방을 재점
검해야 했었다. 이 때문에 정부가 갖던 주도권에 대한 반발로, 1970년대 말에 민전이
창설되며, 이후 국전은 민간으로 이관된다. 그리고 그 명칭은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서
“대한민국미술대전”으로 새로이 개칭된다.
1956년을 전후하여 앵포르멜 운동이 활발히 전개되었다. 또 하나의 흐름인 구상은 그대로
재현한다는 전통적인 리얼리즘적 경향으로, 과거의 흐름을 이어받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국전작가회”에는 이들 추상회화와 구상회화가 모두 공존하며, 때로는 이들이
서로 혼합된 양상을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국전은 신흥미술 경향인 앵포르멜 미학의
실존적인 경향이었으며, 이 경향은 한국화단이 새롭게 극복해야 할 보수미술이었다.
국전은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신인 등용문으로 여겨졌고, 그럴수록 출품자들의
경합은 치열해졌으며 자연히 시비와 잡음도 많아졌다. 따라서 국전은 이후 폐지론도
나왔으나 내부에서 개혁을 꾀하려는 움직임도 많아, 다행히 계속 유지되었다.
앞서 살펴본 바대로, 대전으로 개칭되기 이전의 국전 입상자들 모임인 “국전작가회”는
단순히 서구 방식의 모방이나 수용, 소수의 전위 작가들의 활동으로 해석되기에는 매우
광범위하고 다양한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한국 현대 화단의 다양한 욕구와
사회적 상황이 중첩된 모호한 기호이기도 하다. 그러나 “국전작가회”는 이를 극복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의 앞으로의 과제는 우리의 전통이 무엇인지에 대해 돌아보고,
그 전통적인 내용과 형식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다.
우리는 무엇을 꿈꾸고 무엇을 가정할 수 있겠는가? 그 꿈과 가정은 아마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전제일 것이다. 역사가 발전하듯 예술도 발전한다. 그리고 그것은 사치
스런 방향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또한 집단적인 획일적 분석보다 개인적인 차이에
대한 분석을 통해 다양한 내용과 함의들을 확인하는 일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러한
분석을 바탕으로 한국의 학문을 귀납하여 체계화하고 예술을 다원화해야 하겠다. 이
다원적 예술은 화가들의 자유의지와 생활 속의 경험으로부터 비롯된다. 그리고 이
다원화된 예술은 기존의 절대성에서 상대성으로 전환되며 귀결된 우리의 결론이다.
즉 이 다원주의 예술은 우주적 상대성 이론과 상호소통론의 논리적 결론인 것이다.
하지만 이들 “국전작가회”는 다양한 화풍을 보이며, 구상과 추상이라는 이분법적 구분과
획일적 일반화에 반대한다. 그리고 이들은 취미론의 전통을 이어받아 예술을 고귀한
즐거움으로 설명하려는 모더니즘 예술이론에 대해 비판적이다. 한 마디로 말하면
이들의 다원주의는 이분법의 일반화의 오류를 극복하는 대안이다. 그리고 이들은 동시에
무엇이나 예술이 될 수 있다는 작가정신의 소유자들이다. 그들에게 예술은 자기 의식의
실현이자 서사이다. 바야흐로 오늘날의 “국전작가회”는 과거 권위주의에 저항하고,
자유룹고 다양한 방식으로 새로운 시대 미학을 발휘하는, 진정 이 시대의 화가들이다.
김 효 선 (독립큐레이터)
▲ 권의철 作 traces of time, mixed media on canvas, 53x53cm,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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