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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의철 作 단색화(Dansaekhwa)
- 그의 ‘히스토리’를 만들다 -
글 - 장서윤 기자(前,월간 미술세계)
단색조의 평면에 암각화와 같은 문자를 새겨 넣는 작업 〈히스토리(history)〉 시리즈로 잘 알려진 권의철 작가의 33번째 개인전이 10월 ( )일부터 ( )일까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개최되는 2020/26 마니프展에 초대되어 겸하여 출품 전시된다.
권의철 작가의 〈히스토리〉 작업은 외관상 단색조를 띠고 있다는 점에서 종종 한국의 단색화 장르로 분류되곤 했다. 그가 작품의 소재로 삼고 있는 것은 비석과 같은 유적에 새긴 문자와 문양이지만, 비구상적인 단색화로 구현된 작품이 일반적으로 단색화라 칭해지는 작품들과 유사한 측면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색조의 단순함은 그가 반복적으로, 혹은 구도적인 자세로 마치 기도하듯 한 자 한 자 새겨가는 문자를 더욱 돋보이게 하기 위한 일종의 ‘배경’으로 기능하기 때문이다. 실로 더 많은 것들을 이야기해야 하는 작품에 ‘단색화’라는 하나의 개념을 두름으로써 그 가능성들이 차단되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그가 2세대 단색화 작가라고 불리더라도, 그것이 그의 전부인 것처럼 판단하는 것은 그의 작품이 지닌 의미를 더 다양하고 유의미하게 발전시켜나가는 데 있어 극복해야 할 과제이기도 할 테다.
그렇다면, 단색화 분류에서 탈피해 권의철 작가의 이야기부터 시작해 보자. 그는 홍익대학교 동양화과를 졸업하고 1974년 제23회 대한민국미술대전(이하 국전) 특선 작가로 데뷔, 이후 1984년까지 일곱 번이나 입선한 한국의 대표적인 국전 작가라 할 수 있다. 즉, 그의 시작은 한국화를 본질로 두고 기본 뼈대로 삼아 예술가로서 새로운 실험을 지속해왔던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사실은 그의 관심이 ‘한국적 추상’에 오랜 시간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권의철 작가는 1976년 한국화 추상그룹인 ‘현대차원전’에 참여하면서, 한국화의 기법인 필묵과 평면적 구도는 물론 정신성을 기존의 전통적인 방식에서 과감히 탈피하여 현대적으로 계승하려는 노력을 지속해왔다. 그래서 탄생하게 된 것이 바로 입체추상. 물론 입체추상은 결코 새로운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한국화의 특징 중 하나가 평면성이라는 점, 그리고 수묵의 번짐과 필묵의 변주라는 점에서 두터운 질감과 형태감이 드러나는 입체추상은 확실히 전통적인 한국화와는 다른 것이었다. 작품의 모티브로 삼고 있는 오래된 비석과 그 돌에 새겨진 글자와 문양 또한 그가 추구해온 형식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마치 비석의 표면과 같은 까끌함, 그 단단한 돌을 뚫고 나온 알 수 없는 글씨들의 흔적. 작품의 형식과 내용이 일치하는 건 작가가 오랫동안 고민한 결과이다. 비석 위의 흔적처럼, 권의철 작가의 작품도 예술가로 살아온 작가의 흔적이리라.
“어린 시절 절에서 느꼈던 불상과 비석의 오묘한 흔적과 자국들을 새긴 겁니다. 무슨 뜻이나, 무슨 글을 쓴 건 아닙니다.”(NEWSIS, 2016.12.9.) 중학생 시절, 학교 수업이 끝나면 늘 절에 가서 주위를 둘러보곤 했던 작가의 눈에 들어온 것이 바로 석탑이나 비석이었다. 그리고 돌에 새겨진 글자, 아니 보다 정확히 말해 ‘흔적’들에 이끌린 작가의 마음에도 그 흔적이 새겨졌다. 〈히스토리〉 연작은 그렇게 탄생된 작업이다. 그리고 그 글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는 것처럼, 작가 또한 계속해서 화폭을 채우고, 지우고, 덮어쓰는 행위를 반복했다. 철저히 노동집약적인 작업이기에, 그래서 그의 작품은 단색화의 정신성으로만 환원될 수 없다. “수없이 시도한 붓질로 겹침과 중첩이 반복되는 바탕에 누군가의 염원을 기원하듯 써내려간 글씨와 조형물”(NEWSIS, 2016.12.9.)이라는 그의 말처럼 말이다.
마치 억겁의 시간을 버티고 견뎌낸 비석처럼, 권의철 작가의 작품은 우리 정신사의 견실한 주춧돌이 되고자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조형세계를 위해 작가는 끊임없이 고뇌하면서 작업을 이어가고 있는 것일 테다. 그 시간과 노력을 단지 단색화라는 이름으로 한정 짓지 않고자 함은 최소한 필자가 가질 수 있는 권의철 작가에 대한 예(禮)이다. 이번 한가람미술관에 전시되는 〈traces of time, 時間의 痕迹〉 작품을 통해, 이제 작가가 만들어나가는 ‘히스토리’를 감상해보기를 바란다. 단색화와는 또 다른 감명을 선사해 줄 것이다.
2020. 5. .
글 - 장서윤 기자(前,월간 미술세계)
▲ Traces of time-1609 ∥ 72.7×72.7㎝ ∥ Mixed media on canvas,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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